원조 하이틴 스타로 ‘대한민국의 소피 마르소’라는 별명을 가진 배우 조용원이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추며 인기를 떨어뜨리며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조용원은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생들과 함께 롯데 미스대회에 출전해 신인상을 받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빼어난 미모로 알려졌다.
당시 조용원을 눈여겨보던 방송국 직원은 그에게 KBS 탤런트 8기에 지원해 연예계 진출을 권유했고 합격했다.
김희애, 전인화와 함께 중앙대학교 트로이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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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집안사정에 지원금도 놓치지 않는 성실함과 겸손함이 청춘 스타들 사이에서 돋보였다는 후문이다.
순정만화를 방불케 하는 청순하고 착한 외모와 연기력을 겸비했다는 후문, 연예계 이외의 분야에서도 충분히 성공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뜨거운 태양’ 순이 역으로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했고 아시아태평양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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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학 1학년이던 1985년 그녀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어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등교하던 중 트럭을 추월하려 했으나 차가 가로수를 들이받고 5m 절벽에서 떨어졌다.
큰 사고로 차에서 튕겨져 나온 조용원 씨는 팔과 다리 뼈가 부러질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특히 배우의 생명인 얼굴은 심하게 다쳐 이마에 50바늘만 꿰매었다고 한다.
얼굴에 실명까지 갈 정도의 심각한 부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멍든 부위가 너무 많아 얼굴조차 가꿔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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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치료를 받은 조용원은 사회공포증이 생겨 한동안 학교 기숙사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그녀는 당시 심경을 밝히며 “길거리나 촬영장에서 사람들이 나에게 친절을 베풀 때면 애틋하게 감춰진 얼굴을 보는 것 같다.
물론 미디어 공포증이 생겼습니다.
”
또 “파파라치 같은 분들이 제 얼굴 손상된 부분을 일부러 찍어서 신고하는 분들이 계셨다.
충격적이었고 혼자 많이 울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사회는 너무 이상하고 두렵게 보였습니다.
“
그러나 조용원은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영화 ‘기나긴 여행, 긴 터널’로 주연으로 복귀한다.
이후 여러 작품에 출연했지만 예전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당시 관계자들은 얼굴에 난 흉터를 자신감 상실의 이유로 꼽았고, 카메라를 끊임없이 의식하며 풍부한 표정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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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인기 예능 프로그램 ‘토요일은 즐겁다’의 진행자로 발탁됐지만 교통사고 후유증을 앓던 조용원은 갑자기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조용원은 “밖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유학은 독립된 삶을 찾기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대와 도쿄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조용원 씨는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고 말했다.
평화롭고 한적한 마을에 살며 내면과 육체의 평화를 찾던 조용원은 우연히 도쿄의 한 점쟁이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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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쟁이는 조용원을 보자 “앞으로 세 번 더 교통사고를 당하겠다”고 말해 조용원을 경악케 했다.
이미 큰 사고를 당한 조용원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지만 점쟁이의 말은 현실이 됐다.
조용원은 보도를 걷다가 갑자기 차에 치였다.
그 후에도 교통사고 두 번을 더 겪은 조용원은 점쟁이의 말처럼 충격을 받고 신과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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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조용원은 다시 연기에 도전했지만 예전처럼 빛을 보지 못했다.
방송계를 떠난 조용원은 극단과 벤처사업, 잡지사업을 시작하며 사업에 몰두했다.
현재는 외부 노출 없이 장사를 하며 조용히 살고 있다.
어린 학생이 큰 사고로 몸과 마음이 다쳤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도 안 되고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기길 바랍니다.